화려한 조감도를 꿈꾸며 시작했지만, 예기치 못한 인생의 태풍에 부딪혀 공사가 멈춰버린 건물처럼, 우리의 신앙도 멈춰 서 있지는 않습니까?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하겠다"며 내려놓은 기도의 삽이 녹슬고, 예배의 자리에 잡초가 우거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영적인 중심이 무너지면 삶의 질서도 무너집니다. 열심히 일해도 전대에 구멍이 뚫린 듯 공허한 삶, 그것이 하나님 없이 멈춰버린 이스라엘 16년의 처참한 성적표입니다.
2.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우리가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비교' 때문입니다. 솔로몬 성전의 찬란했던 과거와 초라한 돌무더기뿐인 현재를 비교하며, 우리는 "고작 이것인가?"라는 깊은 패배감에 빠집니다. "내 인생은 실패했다, 우리 가정은 너무 초라하다"는 자조 섞인 한숨이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그 '초라한 겉모습'을 깨뜨리시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진짜 현실을 보게 하십니다.
3. 상황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함께 계심'
하나님은 금과 은을 주어 우리를 위로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가장 확실한 약속을 주십니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이 빈손이었어도 홍해를 건널 수 있었던 건, 그들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 곁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가치는 건물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비록 당신의 인생이 짓다 만 건물처럼 황량해 보여도, 하나님이 지금 그 폐허 속에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당신의 초라한 현실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입니다. 그러니 상황을 보지 말고 곁에 계신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다시 일어서야 할 유일한 이유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16년 묵은 패배감의 현장에 찾아오신 주님은 "상황을 바꾸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와 함께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어두운 밤길에서도 아버지의 손을 잡은 아이는 떨지 않습니다. 내 인생의 조건이 아니라,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능력입니다. 이번 한 주, 초라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내 곁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다시 일어서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다시 일어설 힘은 '나아진 형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폐허 속에서도 내 손을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에서 나옵니다."
성경말씀
학개 2 : 1 - 9
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1)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